2022년 11월 11일 다낭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의 5시간.
이 시간 나는 미니멀리즘을 만났다.
긴 비행시간을 함께할 콘텐츠 몇 개를 가져갔다.
그중 하나가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과
조슈아 필즈 밀번과 라이언 니커디머스의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라는 다큐였다.
목차
1. 미니멀리즘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
2. 나를 위한 선택, 미니멀리즘이 가르쳐준 깨달음
3. 미니멀리즘이 가져다준 변화와 앞으로의 방향
미니멀리즘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
베트남 다낭으로 여행을 갔던 그때는 내 인생에 많은 변화가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이때 비행기 안에서 봤던 미니멀리즘 콘텐츠가 나에게 더 크게 와닿았다.
가난, 가난으로 인해 쌓아 두는 쓸데없는 물건, 별로 원하지도 않는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쓸데없는 물건... 그런 것들이 책을 다큐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대로 살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연결고리를 끊고 싶었다.
먼저, 집에 있는 물건들이 생각났다.
어디서 받아온 쓰지 않는 멸치, 언젠가 쓰겠지 하고 모아둔 비닐봉지, 감명을 받고 평생 간직해야지 했지만 벌써 17년이 된 더 이상 읽지 않는 책, 비싸게 주고 샀는데 살이 쪄서 목도 안 들어가는 아레나 래시가드 S 사이즈, 뭔가 많은 엄청 큰 공구 리빙박스, 닳고 닳도록 신어서 이제는 신지 않는 낡은 신발...
그중에서 부엌 상부장에 있던 포장을 뜯은 채 고무줄로 둘둘 말아놓은 고춧가루가 그렇게 생각났다.
버리고 싶은 마음은 들지만,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선뜻 버릴 수 없었다.
남편이 가져온 물건이었다. 그 시기의 나는 남편과 살림을 합쳤다.
요리를 잘 해먹지는 않는 남편의 그 고춧가루.
내 집에 있는 물건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 선택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편 거니까 하는 방어적인 마음.
그래서인지 이 가정에 속하지 못하는 마음에 겉돌았는데, 그런 마음이 집안의 물건을 대하는 태도에서 티가 났다. 내가 주도적으로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그 고춧가루를 그냥 방치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별로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것도 아닌데 좀 두면 어떠냐 하는 그냥저냥인 마음.
미니멀리즘 책과 다큐를 보고 든 생각은 내 인생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는 전혀 고민해보지 않았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그러니 고춧가루가 주방 상부장을 차지하고 있어도, 그 고춧가루를 나는 전혀 쓸 생각이 없어도, 내 인생에서 자리를 차지하게 두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 인생에 무엇을 둘까를 생각해 본다면 결고 그 고춧가루가 주방에서 제일 손이 많이 가는 곳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가 준 빛깔 고운 태양초 고춧가루가 이미 있었다.
나는 그렇게 우리집에서 당장 없어져야 하는 물건 리스트가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 고춧가루를 버리고 싶은 생각으로 다낭 여행을 가득 찼다.
내 인생의 주도권을 내가 갖고 있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우울한 기분과 빨리 물건을 버리고 싶은 열정적인 마음이 뒤섞였다.
나를 위한 선택, 미니멀리즘이 가르쳐준 깨달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직장생활도 대단히 성취한 것도 없고, 뭘 얻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그냥 다녔다.
매 순간 열심히 하긴 했지만 어떤 목표가 있기보다는 그냥 타고난 성실성에서 오는 관성 같은 태도였다.
전혀 인생을 주도적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해보다는 달 같은 사람이라는 말도 했다.
주변을 서포트해주는 그런 역할을 담아 하는 자조적인 소개말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단하게 성취한 것도 없고, 그냥.. 직장인이었다.
어떨 때는 열정 넘치는 남을 따라 하기도 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까마귀 같은 모습이니 항상 나 스스로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한 번도 나는 나 스스로 뭘 좋아하는지 생각해 본 기억이 없었다.
이런 기저 때문에 나는 선택을 잘 못했다. 정확히는 선택하는 걸 두려워했다.
식당에서 메뉴 시킬 때는 늘 옆에 사람이 뭐 먹고 싶은지를 물어봤다. 내가 먹고 싶은 걸 말하는 법이 잘 없었다. 어쩌다 내가 메뉴라도 고르는 날에는 옆 사람이 만족하는 지를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살폈다. 내 선택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미니멀리즘은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어떤 걸로 내 인생을 채울 것인가.
그 외에는 모두 버리라면서 말이다.
정말 그래도 되나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안 될 이유도 없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 지 몰라서 자신이 없고, 그러다 보니 선택을 두려워하고, 그러다 보니 선택을 하는 능력이 낮았다.
미니멀리즘에서 받은 질문을 되뇌며, 집 안의 물건을 하나씩 생각하며, 이것이 나한테 필요한 것인가 아닌가를 계속해서 선택했다.
한 번에 모든 물건을 버리는 그런 과감함은 없었다. 앞서 말했든 선택하는 능력이 낮으니까.
마음에 드는 미니멀리즘의 상태까지 만드는 데 꼬박 2주 정도가 걸렸다.
처음 선택하는 건 정말 괴로웠지만, 곧 익숙해졌다.
물건을 남길 지 버릴 지 계속 선택하니까 선택에 탄성이 붙었다.
그런 선택이 쌓이니까 나한테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남겨진 물건을 보면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아,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이런 취향이 있구나 하는 나에 대한 발견을 하는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
그렇게 나는 미니멀리즘에 점차 빠져들고 있었다.
나에게 미니멀리즘은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고, 그 선택으로 만든 나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아주 사소한 선택들이 쌓여 만든 나를 내가 좋아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미니멀리즘이 가져다준 변화와 앞으로의 방향
오늘은 미니멀리즘에 빠져들게 된 계기를 썼습니다.
벌써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게 된지도 2년이 좀 넘었네요.
공허하고 표류하던 제 삶이라는 구슬을 미니멀리즘으로 꿰고 있습니다.
물건을 남길지 버릴지 고민하는 사소한 선택을 통해 인생의 주도성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에도 계속 고민합니다. 나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지? 오늘의 나를 어떤 것으로 채울 건가.
계속 바뀌더라고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요.
미니멀리즘에 대한 저의 생각과 경험을 이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적어보겠습니다.
그럼 전 다음 글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P.S 결국 주방 상부장에 있던 고무줄로 둘둘 묶인 고춧가루에는 곰팡이가 잔뜩 껴있더라고요. 진작 버릴 걸 하는 생각과 함께 진작 나를 돌볼걸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곰팡이 낀 고춧가루는 바로 쓰레기봉투로 직행했습니다. 속이 후련하더라고요.
천천히 스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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