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내가 원하는 미니멀리즘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미니멀리즘에 매료되어 물건을 버리며 삶을 가볍게 만든 지 6개월 정도 지나던 시점이었다.
홍콩에 여행을 갔다.
급하게 훌쩍 떠난 여행이었던지라 숙소도, 계획도 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숙소는 집에서 나서기 직전 남편이 예약했다. 우리 둘은 저렴하게 잘 예약했다며 좋아했다.
1박에 5만원 정도였다.
내 인생 가장 무서운 여행의 시작이었다.
목차
1. 홍콩의 숙소는 미니멀하다
2. 5만원 짜리 청킹맨션급 게스트하우스 vs 20만 원짜리 홍콩 5성급 호텔
3. 마무리
홍콩의 숙소는 미니멀하다
좀 쎄해졌던 건 비행기에 타서 홍콩 여행 책자를 펴봤을 때였다.
여행 책자에서 홍콩은 물가가 비싸며, 특히 숙소가 비싸다며 미리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이 좋다는 귀띔을 해주는 것이었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1박에 5만 원이고 이 정도면 저렴한 것 같은데... 뭐 괜찮겠지 했다.
게다가 미니멀리즘에 심취해 있던 나는 자유롭게 훌쩍 떠나는 여행, 수도승처럼 보따리 하나 들고 돌아다니는 가벼운 삶을 동경하고 있었다.
딱 필요한 것만 갖춰진 여행지에서의 숙소. 내가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의 모습이었다.
물건을 더 줄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 끝에 나온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숙소를 홍콩에서 만나게 되었다.
홍콩에는 침사추이역이 있다. 여기는 관광지가 많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우리의 숙소는 이 역 바로 앞에 있는 곳이었다.
게스트하우스가 이런 중심지에 있다니, 홍콩이 많이 덥던데 숙소를 왔다 갔다 하며 쉬며 여행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이 숙소가 안 나오는 것이다. 숙소 주소로 찾아가 봤는데 숙소가 아니었다. 밤이 깊었는데도 홍콩의 밤은 참 덥고 습했다. 홍콩의 빽빽하고 높은 건물들 사이에 압도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다시 보니 우리 숙소는 평점 1점이었다. 난 그 별이 즐겨찾기 한 별인 줄 알았다. 평점 1점 처음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 건물이 있고, 사람들도 많으니 뭐 별일 있겠나 싶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바로 근처에 그 유명한 홍콩의 청킹맨션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청킹맨션
홍콩의 대표적인 슬럼으로 홍콩의 명물이라는 평가와 홍콩의 흉물이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홍콩의 흉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젊은 층이며 식민지 때 추억이 없거나 희미한 그들은 불법체류자가 넘쳐나는 이런 건물은 흉물로밖에 안 본다. 날이 갈수록 철거 목소리가 잦아지고 있고 실제로도 곧 건물을 철거한단 소문이 심심찮게 들린다.
전화도 해보고 구글 지도의 이 숙소의 리뷰를 겨우 찾고 찾아 이 숙소를 찾아갔다.
왜인지 엘리베이터는 철창에 한번 더 닫히는 구조였고, 조명이 아주 어둡고, 낡고, 높은 곳에 있었다.
숙소가 있을 것이라 생각지 못하는 수많은 문들이 있는 방 중에 찾아간 곳은 2중 방범 철문에, 밖에는 전화기가 달랑 달려있는 곳이었다.
홍콩 느와르 영화가 생각났고, 나는 너무 무서웠다.
겨우 이 방범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80년대 여관을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나무문, 밖에 벗어둔 신발들, 치지직 거리는 텔레비전 소리, 비상등만 켜져 있어 어두운 실내.
우리를 열어준 사람은 여기 있지도 않았다. 한 10분을 기다렸나. 민소매 차림의 남자가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이곳이 아닌 다른 건물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시 철장이 달린 엘레베이터를 타고 어떤 방으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놀랍게도 방이 3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방은 비어있는 상태였다. 우리는 그 3개의 방 중 한 곳에 배정받았다.
그리고 우리를 넣어두고 방을 닫고, 또 방을 닫고 나갔다.
방 안의 방.
그곳은 정말 너무 작았다. 숙소 예약할 때 사진이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맞았다.
우선 침대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30cm 정도 떨어진 곳에 바로 화장실 겸 샤워실이 있었다. 이 침실과 샤워실 사이에는 유리 슬라이딩 도어가 있었다.
그리니까 방의 전체 사이즈가 한 가로 2.5m, 세로 2m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이 좁은 공간에 침대도 있고, 변기도 있고, 세면대도 있고, 다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창문도 있었고, 에어컨도 있었다. 협탁도 있었다.
게다가 침대는 퀸사이즈였다. 욕실은 씻으려면 벽이 몸에 닿을 수밖에 없는 사이즈였다. 그러니까 욕실 안에서 핑그르르하고 돌 수 없다는 뜻이다.
창문에는 먼지가 많이 쌓여있었고, 옆 건물과의 사이가 아주 좁았다. 옆 건물에 사는 사람이 뭐 하는지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너무 무섭고 불안한 감정이 올라왔다.
비가 오려는 지 더욱 후덥지근하더니 빗방울이 톡톡 한 방울 씩 떨어지고 있었다.
홍콩의 느와르가 머릿속에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숙소의 모습은 내가 미니멀리즘을 하며 이상적으로 생각한 조건에는 부합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절약할 수 없을 것 같은 공간의 활용, 딱 필요한 것만 갖춰진 물건들.
더 뺄 게 없다. 그리고 다 있다. 시원하게 에어컨도 있다. 게다가 분위기 있게 비까지 오네. 뭐가 문제란 말인가.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미니멀리즘의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된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나의 평가는?
오 마이갓, 이건 아니야.
5만 원짜리 청킹맨션급 게스트하우스 vs 20만 원짜리 홍콩 5성급 호텔
나는 이 무서운 공간을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곳에서는 단 1분도 머무를 수 없었다. 진짜 무서웠다.
방문을 열었더니 검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보였다.
그리고 급하게 5성급 호텔을 예약했다. 1박에 20만 원 정도 하는 곳이었다. 80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2박을 했더니 세금이니 뭐니 해서 50만 원 돈이 나왔다. 예상에 없던 지출이었다.
그만큼 이 숙소가 무서워 나는 아주 안전한 곳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가 평소에 잘 묵지 않는 비싼 호텔을 덜컥 예약했다.
아침에 보니 다른 숙소도 안전하고 컨디션 괜찮은 곳도 많았다.
간 밤에 너무 무서웠던 그 감정이 고스란히 돈으로 표현됐다.
숙소의 대비가 아주 극명했다.
5만 원짜리 청킹맨션 같은 게스트하우스와 20만 원짜리 홍콩의 5성급 호텔.
우리가 찾은 호텔은 로얄가든이라는 호텔이었다.
객실 내부가 훌륭했다. 청결이야 말할 것 없고, 침구 상태도 깨끗하고 포근했다.
호텔 어메니티도 내가 가져온 걸 쓰지 않고, 여기 있는 걸 쓸 정도로 향긋했다.
내부의 가구 디자인도 군더더기 없었다. 특히, 스탠드가 참 마음에 들었다. 메카닉 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이었다.
호텔 밖 풍경도 홍콩의 마천루가 멋진 정경을 이루고 있었다.
호텔 외부도 가든이라는 이름답게 조경이 어우러져 참 멋있었다. 전체적으로 고급진 느낌이 들었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고, 고급스러운 취향이 엿보이는 인테리어, 가구 디자인들.
편안한 무드.
나는 내가 원하는 미니멀리즘의 모습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 주변이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고, 편안한 분위기를 주며, 안전한 것을 좋아한다.
내가 원하는 미니멀리즘은 지금 내가 하는 일 외에는 신경 쓰지 않게 만드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특히, 안전이나 청결로 내 주의력을 흩뜨려 뜨리는 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수도승 같은 고행을 하는 미니멀리즘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대신 내가 원하는 미니멀리즘 모습을 선택해서 그 모습을 가꾸어 나가기로 했다.
이상을 쫓아 내가 원치 않는 모습을 할 수는 절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무리
책 속에서 말하던 미니멀리즘은 개개인마다 다 다른 모습이라는 사실을 체험하게 된 사건이었다.
나만의 미니멀리즘을 찾아가는 여정을 계속해서 해야겠다.
여행을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게 집이 작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이 여행을 통해 바뀌었다. 여행은 집에 돌아오려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돌아온 집에 물건이 가득 채워져 있는 것도 정말 싫지만, 앞서 말한 저런 숙소 같은 집이라면 나는 마음을 둘 곳이 불안정하여 불안할 것이다. 마음이 편안해야 하고 싶은 일에 집중을 할 수 있다.
집의 물건을 극단적으로 줄이기보다는 우리 가족 구성원이 필요한 물건을 제때 잘 사용할 수 있게 바꾸는 것으로 내 미니멀리즘 방향을 조정했다.
천천히 스미는
ⓒ 정리정돈 일기. All rights reserved.
'여행과 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켓몬볼(몬스터볼) 안은 이런 곳일까?, 오키나와 '포켓몬센터' 방문기 (6) | 2025.04.27 |
---|---|
백팩 하나만 매고 떠나볼까? 미니멀 여행 (0) | 2025.02.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