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2개월째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버린 물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1편: 이걸 내가 왜 갖고 있었지?>, <2편: 언젠가 쓸지 몰라 모아둔 물건들>, <3편: 책을 버리고 진짜 독서가 시작됐다>
위 글에 이어 오늘은 내가 이것까지 버려봤다고 말할 정도로,
버리면서도 오랜 기간 고민하고 버리면서도 몇 번을 망설인 물건을 버린 이야기다.
바로, 취미 용품을 버린 이야기다.
목차
1. 더 이상 하지 않는 취미 용품, 왜 이렇게 버리기 힘들까?
2. 내가 버린 취미 용품들
3. 마무리
더 이상 하지 않는 취미 용품, 왜 이렇게 버리기 힘들까?
한 때 너무나도 나를 기쁘게 하던 취미들. 그리고 취미에 위해 사 모든 다양한 용품들.
취미 용품에는 애정이 깃들어 있고, 그만큼 추억도 깊게 스며 있다.
과거에 재밌게 했던 기억 때문에,
언젠가 다시 하게 되면 꼭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 때문에,
취미 용품은 쉽게 버릴 수 없는 물건이 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 취미도 바뀌어간다.
그렇게 좋아하던 취미들을 계속하는 것도 좋았겠지만,
지금은 그 때의 취미 대신 새로운 것이 나를 더 즐겁게 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미 용품을 버리는 일은 어렵다.
이걸 버리는 순간, 마치 그 시절의 성취까지 함께 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언젠가 다시 필요할 거야'라는 생각에 취미용품을 버리지 못했었다.
그러다 미니멀리즘을 접하고, 내 취미 용품들을 들여다보니
추억 외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용하지 않는 클라이밍 장비가 없다 해도 나는 이미 수많은 완등을 했고,
초보 때 사용한 수영복이 없다 해도 수영을 배웠던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마라톤 기념 티셔츠가 없어도 내가 마라톤을 완주했던 경험은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만약 다시 취미 용품을 버린 취미가 하고 싶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마치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새롭게 즐기면 되겠다 싶다.
오히려 더 재밌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정리한 끝에, 나는 과거에 열정을 쏟았던 취미 용품을 모두 떠나보냈다.
지금 나를 즐겁게 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내가 버린 취미 용품들
브라더 미싱
속옷을 직접 만들고 싶은 생각에 미싱을 8만 원 주고 당근에서 샀다. 미싱 기계... 잘 모르지만 브라더가 유명하다고 해서 샀다.
그런데 나는 미싱을 전혀 다룰 줄 몰랐다. 원데이 클래스도 하나 안 들어본 상태였다.
일단 미싱을 사고 그다음에 이것저것 배우고 만들어보자 하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열정이 앞서서 동대문 천 상가 가서 천도 떼왔다. 속옷을 만들 거니까 모달, 인견, 텐셀 같은 천을 샀다.
이 천을 이용한 나름대로 한 스케치를 토대로 미싱을 했는데, 아뿔싸. 아주 천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리고 속옷용 얇은 천들로 나는 거의 방패를 만들었다. 그리고 몇 번을 더 시도하다가 잘 안되니까 질렸다.
그게 이 미싱의 마지막이었다. 미싱을 장롱에 박아두고 전혀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8개월이 흐른 어느 날 이 미싱을 발견한 거다.
이때 나의 속옷에 대한 열정은 사라져 있었다.
그대로 이 브라더 미싱은 당근을 했다. 5만 원에 팔았다. 잘 팔았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클라이밍 암벽화
클라이밍을 할 때는 암벽화를 신는다. 이 암벽화는 조금 작은 듯 딱 맞게 신어야 한다.
나는 클라이밍을 거의 9년 째하고 있는데, 이쯤 되니 다양한 암벽화를 사게 되었다.
클라이밍을 한 기간 때문인지 왠지 고급형을 신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나름 가격대도 있고, 클라이밍에서 알만한 라 스포르티바라는 브랜드의 암벽화를 샀다.
게다가 오프라인에서 신어보고 샀다. 그런데 이걸 살 때 가오가 온몸을 지배했다.
암벽화는 조금 작게 신어야 멋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나는 발이 전족처럼 되는 정도로 작은 사이즈를 골랐다.
신어보고 발끝도 세워보며 이 정도면 딱 맞겠다며 이 신발을 샀다.
그런데 나는 클라이밍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다.
기간만 오래됐지 항상 건강하고 안전하게 운동한다는 모토로,
절대 위험한 문제는 시도도 안 하고, 도전이라기보다는 체력을 증진하는 차원의 클라이밍을 주로 한다.
고로 이렇게 고급형 신발은 필요하지 않았다.
가오로 지배당한 이 신발을 신고 이런 일상적인 클라이밍을 하려니 아주 발이 아팠다.
클라이밍 벽에서 한 판을 하고 떨어지자마자 신발을 벗었다. 발가락 사이사이사 피가 안 통했다.
발꿈치에 비닐을 대고 신을 정도로 신발 사이즈가 작았다.
암벽화를 신고 벗는 게 힘드니 클라이밍을 할 때 주춤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이 이후에 초보자용 암벽화를 하나 더 샀다. 아주 편하다.
신고 벗기도 좋고, 내가 하는 운동 수준에 딱이다.
그리고 이 라 스포르티바 고급형 암벽화는 내 신발장에 고이 모셔두었다.
언젠가 필요한 날이 있을 거라며 말이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그동안 이 신발은 한 번도 신지 않았다.
오랜만에 발견하고 한 번 신어봤는데 발에 살이 쪄서 이제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았다.
언젠가 필요한 날은 오지 않았다. 나는 이 클라이밍 암벽화를 놓아주기로 했다. 안녕.
낡아서 신지 않는 러닝화
나는 러닝화를 늘 하나만 주야장천 신는다. 닳아지면 또 사는 식인데, 막상 버리려면 진짜 아깝다.
새 러닝화가 있어서 이제는 안 신어도 버리기 아깝다.
지금 신는 딱 하나만 남기고 버려봤다. 진짜 너무 후련했다. 내가 버린 러닝화는 생각도 안 난다.
나는 오늘의 달리기를 할 테고, 달리러 나갈 때 늘 신던 걸로 구겨 신고 나간다.
러닝화 자체는 나한테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 아니다. 그냥 일상에 녹아있는 풍경 중 하나다.
예전에 내가 신었던 러닝화를 버리니, 지금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참 좋다.
마라톤 참가 기념티
마라톤을 참가할 때 늘 기념티를 준다. 소재도 시원하고, 내가 이렇게 뛰었다고! 하는 성취감이 되새겨진다.
그런데 이 티. 평소에는 절대 안 입는다.
달리기 할 때는 내가 평소 즐겨 입는 티셔츠를 입지 굳이 이 마라톤 기념 티셔츠를 입진 않게 됐다.
팔 수도 없고, 버리기도 아깝고..
이렇게 쌓은 마라톤 기념티가 한 섹션을 차지하는 걸 보고 이 마라톤 기념티에 대한 정의를 생각해 봤다.
마라톤에 잘 참여하여 잘 뛰었다. 끝.
기념 외에는 없길래 한 번에 다 버렸다. 이 기념티가 없다고 내가 마라톤을 다시는 안 나가는 것도 아니니 뭐 전혀 상관없겠다 싶다.
역시나 버려보니 생각도 안 나고, 내가 달리는 데도 전혀 영향이 없었다. 여전히 나는 잘 달리고 있다.
헬멧
자전거 탈 때 헬멧을 쓴다.
내가 좋아하는 헬멧이 있다. 이 헬멧을 좋아해서 색깔별로 샀다. 3개나.
정확히는 내가 사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니 선물 받았다.
처음엔 좋았는데, 내 머리는 하나밖에 없는데 헬멧은 3개나 있으니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색깔로 하나만 남기고, 하나는 지인을 주고, 하나는 버렸다.
밸런스 보드
밸런스 보드라고 둥근 판에 반구형 받침이 아래 달려있는 형태인데, 여기 위로 올라가서 균형을 잡는 연습을 하는 기구다.
클라이밍 장에서 보고 너무 재밌어서 하나 샀다.
그런데 이게 밸런스를 못 잡으면 바닥으로 쿵쿵 떨어진다. 소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재밌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잘 안 썼다.
그렇게 우리 집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버렸다.
가정용 치닝디핑 턱걸이 철봉 운동기구 고급형
치닝디핑은 턱걸이 연습하는 철봉이다. 그 운동장에 있는 철봉을 집안으로 옮겨왔다고 보면 된다.
등근육 키우고 싶어서 샀다. 턱걸이도 하고 싶은 마음에 샀다.
처음 집에 치닝디핑을 설치했는데 생각보다 커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꽤 오랫동안 이 치닝디핑을 이고 지고 살았다.
나에게 치닝디핑은 등근육 그 자체였다. 그리고 아쉽게도 치닝디핑을 한다고 등근육이 생기진 않았다.
이 치닝디핑을 버리면 내 등근육도 버리는 것 같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다 이 헛된 욕망을 깨닫고 버렸다. 이 치닝디핑은 대형 폐기물로 버렸다. 돈을 들여 버렸다.
초보자용 검은색 실내 수영복
수영을 오랫동안 했지만 내 수영실력은 여전히 중급 정도다.
나한텐 좋은 수영복이 있는데, 여전히 아주 초보 때 쓰던 검은색 실내 수영복을 갖고 있었다.
수영복이 3개 있었다. 누굴 빌려줄 수도 있고, 내 수영복이 찢어지면 보조적으로 써야 싶어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지금은 다 버리고 항상 쓰는 좋은 수영복 하나만 남겼다.
수영 갈 때 고민이 없다. 그냥 늘 갖고 가던 거 하만 챙기면 되니까 말이다.
마무리
오늘은 내가 버린 취미 용품을 기록했다.
취미 용품은 진짜 버리기 어려운 물건이다. 그래도 버렸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취미를 더 재밌게 즐긴다.
여기서 취미 용품을 버렸다고 그 취미를 안 하는 건 아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취미 용품을 버렸을 뿐이다. 지금 사용하는 취미 용품만 남기니 취미를 즐기는 과정이 단순하져서 좋다.
취미를 하는 데 대단하게 의지를 쓰지 않는다. 그냥 루틴처럼 하게 된다.
이 루틴을 만들기까지 초반에 얼마나 힘들었는가. 그 시기를 지나고 만든 귀한 루틴들이다.
이 루틴에 섞인 잔가지들을 쳐낸 것이 사용하지 않는 취미 용품을 버린 것이다.
생각보다 취미를 하는 데는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
내가 버린 물건들 1편: 이걸 내가 왜 갖고 있었지?
2년 2개월 정도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많은 물건을 버렸다.어떤 물건을 버렸나 기록을 남겨보고자 한다. 목차1. 이걸 내가 왜 갖고 있었지 하는 물건 목록2. 마무리 이걸 내가 왜 갖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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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 물건들 2편: 언젠가 쓸지 몰라 모아둔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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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 물건들 3편: 책을 버리고 진짜 독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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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스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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