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때 지겹다
욕실은 습하다. 사방팔방 물이 튄다. 샤워커튼도 강한 물살 앞에서는 춤만 출 뿐이다. 시원하고 압이 센 물줄기 참 좋은데, 욕실이 물바다가 되는 건 피할 수가 없다. 샴푸, 바디워시 통 밑에 물이 고인다. 고인 물을 나름 제거하고 압이 센 물줄기로 뿌려대도 물 때가 생긴다.
맨날 새 물을 쐬어주는 데 왜 물 때가 생기지.
미끌미끌한 물 때가 참 싫다. 맨날 새 물을 쐬어주는 데 왜 물 때가 생기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 물 때는 잘 씻기지도 않는다. 씻겨 내려가야 하는 것 아닌가. 물만으로는 뽀득뽀득하게 잘 닦이지 않는다. 선반은 이유도 알 수 없이 미끌거린다. 모서리 유리 선반이라 그런가.
이 모서리에 유리 선반은 또 어떤가. 보기에도 참 불안하다. 유리가 깨지거나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는데도 불안을 만든다. 깨지면 많이 다칠 텐데 하는 생각. 유리뿐만 아니라 스테인리스 선반도 싫긴 하다. 물 때 자국이 남기 때문이다. 지금 보니 죄 없는 선반을 싫어했네 싶다. 그저 물 때가 싫으니 다 싫다.
어떻게 하면 물 때를 안 만들 수 있을까. 없애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안 만들면 되지 않나.
바닥을 없애고, 벽에 붙이기
물 때가 싫어서 욕실용품을 공중부양 하기로 했다. 바닥을 없애고 욕실용품을 벽에 붙이자. 공중부양 하기 위해 홀더를 사기로 했다. 시중에 다양한 공중부양 홀더가 있었다. 그런데 걱정이 되었다. 욕실은 타일로 되어있는데, 타일에 구멍을 뚫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배보다 배꼽이 큰 격이었다.
샴푸 공중부양 좀 하자고 욕실 타일을 뚫는 건 오바지.
다시 알아봤다. 접착제로 벽에 붙일 수 있는 욕실용품 홀더가 있었다. 그런데 접착제로 이 무거운 샴푸통이 벽에 붙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역시 못이 최고지 않나. 새벽에 샴푸통이 떨어져 우당탕탕 소리가 벌써부터 귓가에 재생됐다.
접착이 잘 되기 위해 24시간 기다렸다가 샴푸 통을 걸어야지라는 마음과 함께 주문했다. 그럼 잘 붙어 있겠지. 아니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
접착제가 굳을 때까지 24시간 기다리면 잘 붙어있을 거야
추가로 홀더와 함께 검색되는 예쁜 디스펜서 세트(덜어 쓰는 통 세트)가 많이 있어서 고민했다. 사고 싶어서.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샴푸나 바디워시 원액을 이 디스펜서 통에 덜어 담아야 했다. 나는 그런 수고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귀찮다. 나는 샴푸를 사면 통 그대로 걸 수 있으면서, 홀더가 최대한 눈에 띄지 않길 바랐다. 본인을 드러내기보다는 역할에 충실한 것이 좋다. 제일 심플한 ㄱ자 모양의 홀더를 골랐다.
펌핑해도 안 떨어진다
다행히도 홀더는 잘 자리 잡았다. 샴푸통을 아무리 펌핑하고, 바디워시 통을 펌핑해도 잘 붙어있다. 24시간을 기다려서 그런가. 처음엔 떨어질까 봐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의식하지 않고도, 힘 조절을 하지 않아도 잘 펌핑되는 것을 안다.
펌핑해도 벽에 잘 붙어있구먼
우리 집은 이제 샴푸통이랑 바디워디 통 밑에 물 때가 없다. 통 밑에 물이 고이지 않기 때문이다. 유리 선반이 없으니 샴푸통을 아래로 옮겨두고, 유리 선반의 미끌미끌한 물 때를 닦지 않아도 된다. 일상이 바빠 욕실에 신경 쓰지 않았을 때 언제 생긴 지 모른 두껍게 쌓이는 물 때도 없다. 아예 생기지 않으니까. 하나의 행동을 줄인 것이지만 세월이 쌓이면 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그중 하나의 행동을 없앤 것이 뿌듯하다.
오늘의 세줄 정리
- 물 때를 없애기 위해 욕실 유리선반을 제거하고, 욕실용품은 홀더를 이용해 벽에 붙이기로 했다.
- 홀더가 접착제만으로도 잘 붙었다. (접착제 응고까지 24시간 기다림)
- 욕실용품 펌핑을 맨날 해도 안정적으로 잘 붙어 있다. 사용성 굿, 욕실용품 공중부양 성공!
P.S
유리 선반을 떼 낸 자리에 구멍이 나서 실리콘으로 메꿨다. 흐린 눈으로 보면 안 보인다고 애써 외면하는 중이다. 성공적으로 붙어있는 공중부양된 샴푸 통에만 초점 맞추고 뿌듯한 미소 짓는 나를 발견한다. 오늘도 잘 붙어있군.
천천히 스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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