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냉장고를 열었는데, 선물 받은 귀한 멸치가 보였다.
받을 땐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문제는 어떻게 먹을지 몰랐다.
멸치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라서 한 참을 그냥 둔채 잊고 있었다.
이게 몇 달이나 방치된 거지? 싶을 정도로 오래된 것 같았다.
버리긴 아깝고, 그렇다고 손이 가는 것도 아니라서 그대로 두었던 멸치.
진공 비닐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라 '일단 열어나 볼까?'하고 조심스레 포장을 뜯었다.
그런데 순간, 윽! 악취가 코를 찔렀다. 멸치가 썩은 것이다.
알고 보니 멸치는 냉동보관이 필수인 식품.
그걸 몰랐던 나는 멸치를 상온에 보관을 한 셈이었고, 결국 이 귀한 멸치는 버렸다.
이 일을 계기고 냉장고를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받는 것도 쌓아두는 것도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차
1. 냉장고 파먹기, 쌓아두는 소비습관을 바꾸다
2. 냉장고 파먹기 = 불필요한 물건 줄이기
3. 냉장고를 비우니 삶이 더 단순해졌다
냉장고 파먹기, 쌓아두는 소비습관을 바꾸다
멸치를 버리고 냉장고를 다시 들여다보니, 먹지 않는 식품들이 꽤나 보였다.
신혼 초에는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종종 갔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대용량의 물건을 싸게 팔았다.
여기서 고기나 치즈, 곤드레밥 같은 냉동식품을 한가득 사다 날랐다.
"이 가격에 이 만큼을?"
이렇게 많은 음식을 이런 가격에 팔다니, 한 번에 먹는 금액을 생각하면 안 살 수 없는 가격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먹을 음식이니 소분해서 두고두고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번을 가다가 요즘엔 가지 않는다.
이렇게 사놓은 음식들이 결국 물리기 때문이다.
한 번에 먹는 양이 많지 않다보니, 냉동실 속 음식들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특히 고기. 처음에는 이런 저런 요리를 해먹기도 했다.
하지만 밖에서 사먹기도 하고, 간단하게 먹기도 하고, 매 끼 고기를 먹는 것도 아니었다.
또 매 끼마다 집에서 밥을 먹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냉동실에 있는 기간이 오래되기 시작했다.
한 2주만 지나도 왠지 신선한 고기가 아닌 느낌이 들었다. 먹기 싫은 느낌.
차라리 정육점에서 바로 사서 먹으면 신선할 텐데 하는 생각이 쌓였다.
고기보다 먹는 빈도가 적은 치즈나 냉동식품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이런 대용량으로 사는 제품은 의외로 유통기한이 짧은 경우가 많았다.
물론 얼려서 먹으면 된다고는 하지만 유통기한은 이미 한참 지난 제품은 왠지 찝찝하게 느껴졌다.
묵혀서 먹는 느낌이 점점 더 들었다.
신선하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많이 사다가 쟁여놓는 소비 습관은 오히려 신선하게 먹기 어렵게 만드는구나.
그날 이후로 이미 사놨던 제품을 다 먹고, 앞으로 조금씩만 사서 먹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냉장고 파먹기를 시작했다.
냉장고 파먹기 = 불필요한 물건 줄이기
처음엔 냉장고 속 식재료를 다 파먹고,
'텅 빈 냉장고'를 만든 뒤 장을 보러 가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냉장고를 완전히 비우는 데 무려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애호박 하나로도 두 끼를 해결했다.
애호박 계란말이를 해 먹고, 남은 건 된장찌개에 넣었다.
한 달이 지날 무렵, 다 말라비틀어진 채소들도 된장찌개에 넣으니 또 한 끼가 되었다.
8개나 12개씩 사놓은 참치는 활용도가 무궁무진했다.
이걸로도 몇 끼를 해먹은 지 모르겠다.
계란은 30구짜리가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이것저것 해 먹어도 줄지 않았던 식품이었다.
그리고 미역.
냉장고 속 식재료가 정말 다 떨어졌다고 느낄 때 나온 끝판왕이었다.
원래 미역국은 무조건 소고기를 넣어야 끓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끓여보니 미역만으로도 훌륭한 미역국이 됐다.
양파는 그 김치찌개를 끓일 때도 반개면 충분했다. 양파를 소진하려고 이런저런 요리에 넣어먹어보기도 했다.
버섯하나로도 어쩜 그리 많은 걸 해 먹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냉장고 파먹기는 정말 무궁무진했다.
이때 기간에 혹독하게 묵힌 식품들을 다 먹었다.
매끼 정성껏 맛있게 만들어 먹었지만, 빨리 소진하고 신선한 재료로 다시 채우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그리고 마침내, 비상식품 하나 없는 상태, 텅장고를 완성했다.
정말 개운했다.
그동안 거의 쓰지 않았던 머스터드소스나 마요네즈도 싹 비웠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냉장고 속에서 잠들어 있던 식재료들을 다 먹고 나니, 나는 깨달았다.
"이렇게 많이 사두면, 신선하게 먹을 수가 없구나"
이후부터는 정말 필요한 식품만 사기로 다짐했다.
냉장고를 비우니 삶이 더 단순해졌다
장을 볼 때 "이건 저녁에 먹고, 이건 내일 점심에 먹어야지"하고 계획을 세운다.
그래서 메인 요리 2~3개 분량을 마트에서 사 오지만, 문제는 그렇게 딱 맞춰 먹기 어렵다는 것이다.
장을 보고 오면 피곤해서 결국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내일 점심에 먹겠다던 재료는 또 미뤄지고...
그러다 보면 2~3일 후에야 겨우 조리하게 된다.
또 묵혀 먹는 패턴이 반복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당일 먹을 만큼만 사는 것.
한꺼번에 사두지 않으면 음식을 더 신선하게,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다.
냉장고가 가벼운 건 덤이다.
이제는 파스타 소스도 1+1으로 사지 않고, 조금 비싸더라도 가장 작은 용량 1개를 산다.
그 작은 병 하나만으로도 두 끼는 충분하다.
게다가 파스타를 두 끼 연속으로는 먹지 않기 때문에 이 마저도 꽤 오랫동안 냉장고에 있게 된다.
이렇게 긴 냉장고 파먹기 이후, 나는 장을 잘 보지 않게 되었다.
냉장고 속 재료를 먼저 활용하고, 필요한 재료만 최소한으로 산다.
이제 냉장고엔 하루나 이틀 치 정도의 식재료만 남아있다.
이렇게 가벼워진 냉장고를 보며,
나는 점점 불필요한 물건을 덜어내는 미니멀리즘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천천히 스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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